한국 신화/초공본풀이[제석본풀이]

[스크랩] 제주신화 연재 4

실나비 2013. 1. 31. 11:06

 

<초공본풀이>

 

임정국 대감과 짐진국 부인 사이에 자식이 없더니 절에 빌어 늦게 여자아이를 얻었는데, 가을 단풍이 드는 철에 태어났다고 하여 그 이름을 ‘저 산 줄이 벋고 이 산 줄이 벋어 왕대월석 금하늘 노가단풍 자지맹왕 아기씨’라 했다. 임정국 대감과 짐진국 부인이 옥황상제의 명으로 벼슬을 살러 떠나게 되자 아기씨는 집에 홀로 남겨지고, 살창을 만들어 자물쇠롤 단단히 잠그고 구멍으로 밥을 넣어주었다. 어느 날 시주를 받으러 온 주자 선생은 아기씨가 갖힌 살창의 자물쇠를 열고, 전대에 살을 붓는 아기씨의 머리를 세 번 쓰다듬고 떠났는데 그때부터 태기가 있게 되었다. 급한 전갈을 받고 온 부모는 아기씨를 집에서 내쫓고 아기씨는 방랑의 처지가 되었다. 용왕의 사자인 거북의 도움으로 바다를 건너 주자 선생을 만나고, 불도 땅에 내려가 세 형제를 낳았으니, 맞이는 본맹두, 둘째는 신맹두, 셋째는 삼맹두라 했다.

그들은 집이 가난하여 어렵게 서당에 다니고, 아궁이 재를 모아 글씨를 썼기 때문에 잿부기 삼형제라는 별명으로 불렸다. 이들 삼형제는 삼천선비와 함께 과거를 보러 가서 선비들의 갖은 방해와 모략을 극복하고 장원급제한다. 그러나 삼천선비의 위계로 어머니가 삼천천제석궁에 갖히게 되고, 세 아들은 벼슬을 버리고 온갖 시련을 견뎌 어머니를 구한다. 그리고 삼천선비를 복수하고 그 과정에서 무구(巫具)를 만들고 굿하는 법을 시작하게 되었다. 삼형제는 어머니를 구하기 위해 팔자를 그르쳐 무당(심방)이 되었으며, 후에 무업을 유씨부인에게 전하였고, 오늘날도 그 굿법이 내려오고 있다고 한다.

 

1. 고구려 건국신화와 유사

<초공본풀이>는 육지의 <제석본풀이>와 유사하다. 부모가 집을 비운 사이 홀로 남겨져 있던 당금애기가 스님에게 시주를 하다가 손을 접촉하고 임신하여 아들 셋을 낳고 온갖 시련을 극복하여 자신은 삼신(탄생을 주재하는 신)이 되었고 아들은 삼태성이 되었거나 삼산(三山)의 신이 되었다는 이야기다. 고구려 건국영웅인 <주몽 신화>는 제석본풀이가 역사화 된 흔적을 보인다. 해모수와 사통하여 임신한 유화가 주몽을 낳았고, 아비 없이 자란 주몽은 잿부기 형제처럼 아비 없는 자식이라고 놀림을 받고, 주변 금와왕의 아들에게 죽을 위협을 당하지만, 시련을 극복하고 왕위에 오른다는 영웅의 일생이다. 유화는 햇빛에 접촉하여 임신하였다고 기록되어 있기도 한데, 그 탄생의 신성함을 드러내기 위해 신비화시킨 흔적이다. 중이 머리를 쓰다듬었다거나 손을 잡아 여인(당금애기와 지명왕 아기씨)가 임신하였다는 것은 불교가 들어온 후에 변모한 내용이다. 애초에는 해모수와 같은 신성한 영웅과 결합한 내용이었을 것이다.

<초공본풀이>는 신성한 인물과 접촉하여 낳은 삼형제가 시련을 극복하고 무당의 조상(巫祖)가 되었다는 신화다. 이런 신화가 생성될 때 무교 즉 샤머니즘은 지배층의 종교였고, 그 당시 지배자는 무당의 역할을 함께 하였다. 후에 불교가 들어와 무당이 민간 무당으로 전락되고 말았지만, 애초 무당은 국가 무당으로서 지배자의 권능을 함께 지닌 존재였다. 그러니 삼형제는 <삼성신화>의 고 ․ 양 ․ 부 삼신인(三神人)과 같은 국가의 지배자다.

 

2. 대장장이와 쇠를 다루는 능력

지명와 아기씨가 낳은 삼형제는 아버지를 만날 때 하늘과 땅과 문을 처음 보았다고 했고, 과거에 급제할 당시 천지혼합(天地混合)과 천지개벽(天地開闢)이란 글을 썼다고 하는데, 이는 삼형제가 천(天) ․ 지(地)와 통하는 문(門)을 관장하는 신격이고, 천지가 혼합되어 있던 것을 개벽시킨 능력과 연관되는 존재다. 삼형제는 동해바다의 쇠철이(대장장이) 아들을 불러와 여러 기구를 만들었다고 하니, 쇠를 다루는 철기문명의 주역이기도 하다. 신라의 탈해는 숯과 숫돌을 감추었다가 호공의 집을 빼앗고 나중에 왕이 되는데, 그도 대장장이 - 쇠를 다루는 능력을 지닌 자다.

삼형제가 중의 자식이어서 과거에 낙방했다는 내용은 후에 덧붙여진 것이니, 과거제도란 유교가 들어온 후의 것이고, 스님이란 불교가 들어온 후의 것임에서 잘 알 수 있다. 애초에는 삼형제보다 큰 권력을 지닌 방해꾼들에 의해 시련을 당하다가, 온갖 역경을 극복하고 투쟁에서 승리한다는 영웅의 이야기였을 것이다. <초공본풀이>는 기이하게 탄생한 자가 탁월한 능력을 보이고 기존의 세력을 제압하여 승리자가 되는 영웅의 일생이다.

 

3. 어머니 ‘자지명왕 아기씨’의 능력

아기씨가 집에서 쫓겨나 방랑하다가 자기를 임신시킨 주자 선생을 만나게 되는 대목에서 우리는 즐거운 해후를 기대했다. 그러나 주자 선생은 아기씨에게 두 동이의 엄청난 벼를 손톱으로 까라는 시련을 준다. 아기씨가 손톱으로 껍질을 까다가 힘이 들어 잠깐 잠이 들었을 때 참새들이 날아와 모든 벼의 껍질을 까주고 간다. 이 모습을 본 주자선생이 아기씨를 인정하게 된다. 우리는 여기서 콩쥐팥쥐와 신데렐라 이야기를 만난다. 의붓어미는 콩쥐가 왕실의 파티에 참석하지 못하도록 벼의 껍질을 까는 일을 부과하였는데 ,참새들이 날아와 모두 해결해주었다는 이야기다. 서양에서는 요정의 도움이고 우리나라에서는 선녀의 도움이 있다. 하늘의 은혜를 입는 주인공은 왕비가 되거나 신격이 된다. 하늘의 권능과 여주인공의 능력이 닿아 있다. <초공본풀이>의 아기씨는 곡식을 먹을 수 있도록 해주는 곡모신의 모습이 아닐까. 앞에서 살핀 주몽의 어머니 유화는 아들에게 오곡의 종자를 보내는 곡모로서의 능력을 갖는데, 삼형제의 어머니인 아기씨는 유화의 권능과 대비된다. <제석본풀이>에서 당금애기는 아이의 탄생을 주재하는 삼신이 되었듯이, <초공본풀이>의 아기씨는 곡식과 연관되는 생산신의 모습을 애초에 지녔는데, 후에 어머니의 역할은 축소되고 삼형제 무조신의 능력만이 남게 되었던 것으로 보인다. 제주에는 아이의 탄생을 주재하는 <삼승할망>이 이미 있기 때문에 <초공본풀이>의 아기씨는 직업을 잃어버린 것 같다.

 

출처 : 허남춘의 슬로시티
글쓴이 : 허남춘 원글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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