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 신화/한국의 신화,설화.

[스크랩] 연오랑(延烏郞)과 세오녀(細烏女)

실나비 2013. 3. 3. 07:43

연오랑(延烏郞)과 세오녀(細烏女)

 

 제8대(第八代) 아달라왕(阿達羅王) 즉위 4년 정유(丁酉)에 동해 바닷가에 연오랑과 세오녀 부부가 살고 있었다. 어느 날 연오가 바다에 나가 해조(海藻)를 따고 있는데, 갑자기 바위 하나가 나타나더니 연오를 싣고 일본으로 가 버렸다. 이것을 본 그 나라 사람들은, "이는 범상한 사람이 아니다." 하고는 연오를 세워 왕으로 삼았다. 세오는 남편이 돌아오지 않자 이상히 여겨 바닷가에 나가 찾다가 남편이 벗어 놓은 신을 발견했다. 세오가 그 바위 위에 올라갔더니, 바위는 또한 전처럼 세오를 싣고 일본으로 갔다. 그 나라 사람들은 놀라 왕에게 사실을 아뢰었다. 마침내 부부가 서로 만나게 되어 그녀를 귀비(貴妃)로 삼았다.

 이 때 신라에서는 해와 달이 광채를 잃었다. 일관(日官)이 왕께 아뢰길,

"해와 달의 정기(精氣)가 우리 나라에 내려와 있었는데, 이제 일본으로 가서 이런 괴변이 생겼습니다."

라고 했다.

 왕이 사자(使者)를 보내서 두 사람을 찾으니 연오가 말하길,

"내가 이 나라에 온 것은 하늘이 시킨 일인데 어찌 돌아갈 수가 있겠소. 그러나 나의 비(妃)가 짠 고운 비단이 있으니 이것으로 하늘에 제사를 드리면 될 것이오."

하고는 사자에게 비단을 주니, 사자가 돌아와서 사실대로 고했다. 그의 말대로 하늘에 제사를 드렸더니, 해와 달의 정기가 전과 같이 되었다. 이에 그 비단을 어고(御庫)에 간수하고 국보로 삼았다. 그 창고를 귀비고(貴妃庫)라 하고, 하늘에 제사 지낸 곳을 영일현(迎日縣) 또는 도기야(都祈野)라 했다.       

                              삼국유사(三國遺事)

 이 이야기는 박인량(朴寅亮)이 지었다고 하는 '수이전(殊異傳)' 속에 실려 있었던 설화이다. 그러나 오늘날 '수이전'은 전하지 않고, 대신 일연(一然)의 '삼국유사'와 서거정(徐居正)의 '필원잡기(筆苑雜記)'에 옮겨 실려 전해 온다. 이 설화에서 연오와 세오 부부가 일본으로 건너가자 신라의 해와 달이 빛을 잃었다는 이야기는 이들 부부가 일월의 정기(精氣)와 관련이 있음을 암시한다. 특히 세오가 짠 비단으로 하늘에 제사를 지냈더니 해와 달이 그전과 같이 되었다는 것은 이런 뒷받침을 더욱 강력히 해 준다. 또 연오와 세오가 일본으로 건너가 그 곳의 왕이 되었다는 이야기는 고대의 한일 관계에 시사해 주는 바가 크다 하겠다.

 태양 신화의 일본 이동을 말해주는 이 설화에서 세오녀가 태양과 관련된 사실을 알 수 있다. 세오녀의 세초로 빛을 찾는다든가 하는 일련의 이야기는 태양의 여신 설화를 말해주는 증거이며, '烏(오)'가 태양을 뜻한다는 중국 문헌에서도 찾을 수 있다.

 

 연오랑과 세오녀에 대하여

 연오(延烏)와 세오(細烏)가 일본으로 건너가게 되자 일월이 빛을 잃었다가 세오의 비단으로 제사를 지내자 다시 빛을 회복하게 되었다는 설화.
본래
수이전 殊異傳에 전하던 것인데, 고려 때 삼국유사에 채록되었다. 이 설화는 단순한 연오·세오 부부의 이동설화가 아니고 고대의 태양신화의 한 원형으로 여겨진다.


영일현의 영일(迎日), 즉
해맞이의 지명도 태양신화와 직접 관련이 있으며, 일본서기천일창설화 天日槍說話도 같은 유의 광명의 신, 즉 태양신화의 이동전설이라 할 수 있다.
우리 나라의 동남 해안과 일본의 이즈모(出雲) 지방은 역사적으로도 문화의 전승로였음을 감안해 볼 때, 그러한 문화를 따라 이동한 태양신화의 한 모습을 이 설화는 잘 설명하고 있다.
세초(비단)를 최남선은
Mana
라는 말로 표현하였으며, 비단을 제사하여 광명을 회복하였고, 이 비단을 귀비고에 간직하여 국보로 삼았다고 하였다.
한편, 도기야는
동국여지승람에 욱기야(郁祈野)라고도 하였으니, 이는 경상도지리지 근오지(斤烏支)의 오지(烏支)와도 음이 일치하며 일본의 지명 오키(隱岐)와도 동일하여, 연오·
세오가 일본에 건너가 구연의 땅 오키(迎日)의 이름을 자기의 신왕국의 명칭으로 삼았다고도 보여진다. 이 점은 일인 나카다(中田)도 출항과 기항지를 영일만과 오키 지부도(知夫島)로 비정하고 있어 매우 흥미롭다.
결국
연오랑세오녀설화
는 일찍이 우리 민족이 일본 땅을 개척하여 통치자가 되고 내왕한 문화적 사실을 원시적 태양신화의 동점설화에 붙여 상징적으로 설명하고 있는 좋은 예화라 생각된다. 그러므로 연오와 세오도 광명을 의인화한 명칭으로 보는 것이 타당할 것이다.

참고문헌 三國遺事, 延烏郎細烏女傳說의 由來(金昌釣, 新興 창간호, 1929), 알타이系 始祖神話延烏郎細烏女(朴時仁, 藝術論文集 5, 1966), 延烏細烏說話攷(蘇在英, 국어국문학 36, 1967), 延烏郎細烏女說話의 한 연구(李寬逸, 국어국문학 5557, 1972).

?댁셿洹쇨낵 ?댄븰以€???щ쭩??臾명븰 수이전

 통일신라 후기에 지어진 작자 미상의 한문설화집. 원명은 신라수이전(新羅殊異傳)이다. 지은이에 관해서는 여러 학설이 있다. 각훈(覺訓)이 지은 해동고승전≫〈아도전 阿道傳에는 박인량(朴寅亮)으로 밝혀져 있다.
일연(一然)의 삼국유사 원광서학(圓光西學)과 보양이목(寶壤梨木)조에서는 후인이 신라이전 新羅異傳을 개작하면서 작탑이목(鵲塔璃目)의 일을 함부로 원광전에 기록한 것이다(後人改作新羅異傳濫記鵲塔璃目之事于圓光傳中).
라고 한 데에서 김척명(金陟明)이라는 설이 나왔다.
권문해(權文海)의
대동운부군옥 大東韻府群玉 찬집서적목록 본국 제서조(纂輯書籍目錄 本國諸書條)에서는 책이름은 신라수이전이며, 지은이는 최치원(崔致遠
)이라고 밝혀 놓았다. 현재로서는 모두 불확실하다.
박인량이 지었다는
아도전은 김부식(金富軾)의 삼국사기에 따르면, 신라인 김용행(金用行)의 아도본비 我道本碑와 비슷하여 각훈의 말을 믿기 어렵다. 원광법사전 圓光法師傳을 개작했다는 김척명이 신라수이전
의 개작자라는 설은 아직 더 연구되어야 할 가설이다.
최치원이
신라수이전의 지은이라는 기록은 그 일문 중에 최치원이 있다는 점 자체로서 이미 부정적일 수밖에 없다. 현재 전하고 있는 신라수이전의 일문은
에서 보는 바와 같이 14편으로 신라의 설화를 단편적으로나마 이해할 수 있는 귀중한 자료이다.
뿐만 아니라, 우리 고소설문학사의 상한선을 높일 수 있는 근거가 되기도 한다. 이 일문의
최치원은 김시습(金時習)의 금오신화 金鰲新話
에 못지않은 소설 작품으로 보기 때문이다.

참고문헌 往五天竺國傳外(李錫浩, 乙酉文化社, 1970), 韓國文學의 考證的硏究(崔康賢, 高麗大民族文化硏究所, 1996), 新羅殊異傳小攷(崔康賢, 국어국문학 25·26, 1962·
1963), 崔致遠의 小說性(曺壽鶴, 嶺南語文學 2, 1975), 古典文學關係記錄 三篇(朴魯春, 崇田語文學 5, 1976), 形成期散文試考(李京雨, 張德順先生華甲紀念韓國古典散文硏究, 同和文化史, 1981), 韓國漢文小說簡史(張孝鉉, 韓國古小說史의 視覺, 국학자료원, 1996).

?댁셿洹쇨낵 ?댄븰以€???щ쭩??臾명븰 필원 잡기

 조선 전기에 서거정(徐居正)이 역사에 누락된 사실과 조야(朝野)의 한담(閑譚)을 소재로 서술한 수필집. 2권 1책. 목판본. 초간본은 저자의 요청으로 유호인(兪好仁)이 의성 군수로 재임 중, 관찰사 이세좌(李世佐)의 지원을 얻어 1487년(성종 18)에 간행하였다. 초간본은 조카 팽소(彭召) 혹은 문인 표연말(表沿沫), 문생 조위(曺偉)의 서문, 문인 이세좌의 발문이 앞뒤에 붙어 있다.
초간본이 임진왜란·병자호란의 병화로 많이 산실되고, 사본도 얻어 보기 어렵게 되자 서거정의 6대손 정리(貞履)가 의성 군수로 재임 중 중간(重刊)에 착수하였으나, 중도에 전근되어 공역이 중단되고, 또 재력도 모자라 포기해야 할 상황에 이르렀는데, 이 때 안동부사 임담(林机)과 전주부윤 김남중(金南重)이 공장(工匠)과 여판(餘板)을 보내어 크게 도움으로써 1642년(인조 20년) 10여 개월 만에 중간의 공역을 마칠 수 있었다.
중간본은 팽소·조위 혹은 표연말의 서문과 이세좌·정리의 발문이 붙어 있고, 간기에 ‘청풍군 중간(淸風郡重刊)’으로 나와 있다. 중간본은 국립중앙도서관·만송문고(晩松文庫)에 각각 소장되어 있다.
서거정은 일류의 해박한 지식과 깊은 식견을 가지고 우리 나라의 사적(事蹟)을 널리 채집하여, 위로는 조종조(祖宗朝)의 창업으로부터 아래로는 공경대부(公卿大夫)의 도덕언행과 문장정사(文章政事), 국가의 전고(典故)와 여항풍속(閭巷風俗)의 세교(世敎)에 관한 것, 국사(國史)에 기록되지 않은 사실 등을 격식에 매이지 않고 간결하면서도 정연한 필체로 기술하였다.
이 책은 조선 초기의 인정·풍물을 파악하는 데 귀중한 자료가 되며, 그의 다른 저작인 ≪태평한화골계전 太平閑話滑稽傳≫과 함께 설화문학의 훌륭한 작품으로 평가받고 있다. ≪대동야승 大東野乘≫과 ≪광사 廣史≫에도 수록되었는데, 초간본에 의한 사본을 저본으로 삼은 듯 중간본의 발문이 없다. 다만, ≪광사≫ 수록본에는 김려(金捏)의 정사 발(淨寫跋)이 붙어 있다.
1971년 민족문화추진회에서 간행한 ≪국역 대동야승≫Ⅰ에 역본이 김두종(金斗鍾)의 해제와 함께 들어 있다. 1972년 이경선(李慶善)이 ≪한국(韓國)의 사상대전집(思想大全集)≫ 8에 해설을 쓰고, 성낙훈(成樂熏)의 역문을 수록하였고, 1981년 서광일(徐光日)이 해제·색인을 붙여 을유문고(乙酉文庫)로 역본을 내었다. 국립중앙도서관·고려대학교 만송문고·산기문고(山氣文庫)에 소장되어 있다.

≪참고문헌≫ 大東野乘.

?댁셿洹쇨낵 ?댄븰以€???щ쭩??臾명븰 태양에 대하여

Ⅰ. 어원

‘태양’은 해를 가리키는 한자어이다. 본래 해를 본뜬 한자는 ‘일(日)’이다. 천지 만물의 근본을 이루는 음양(陰陽) 중에서 ‘양(陽)’의 정수(精髓)를 해[日]로 생각하여 ‘태양’이라 일컬었다. ‘해’는 한자어 태양에 대한 고유어이다. <陳泰夏>

Ⅱ. 신화

[태초의 혼돈] 무속 신화 천지왕 본풀이에서는 태초의 혼돈 상태 때에 2개의 태양이 있었다. 이 두 태양의 열의 과잉 공급으로 사람이 타 죽게 되어, 하늘의 천지왕은 아들에게 명하여 1개를 없애 버렸다. 이로써 인간계는 질서 있게 정리되어 번성했는데, 나라와 고을, 마을로 갈리어 잘 살게 되었다는 것이다. 함경 남도 지역에서 채록된 서사 무가 창세가(創世歌)에도 이와 같은 2개의 태양이 뜨는데, 여기서는 미륵님이 혼돈을 정리했다. 두 무속 신화의 공통된 주제는, 태초의 혼돈을 정리하고 우주의 질서를 바로잡는다는 근원적 해석이 주를 이룬다. 여기서 2개의 태양은 태초의 혼돈을 상징한다.

[천제자, 국조, 신성함] 개국 신화에서의 태양은 현대인이 일반적으로 인식하고 있는 불덩이 형태가 아닌 알[卵]이나 일광(日光) 등으로 나타나며, 하느님 또는 그 아들[天帝子]이나 국조(國祖)를 상징한다. 이 같은 선인들의 의식에 내재하는 천제자로서의 태양 묘사가 단적으로 기술되어 있는 것은 이규보의 ‘동국이상국집’ 동명왕편이다. 해모수는 하느님의 아들로서, 처음 하늘에서 내려올 때 오룡거(五龍車)를 타고 왔다. 그를 따르는 100여인은 모두 흰 고니를 탔으며, 채운(彩雲)이 위로 뜨고, 음악 소리가 구름 속에서 울렸다. 웅심산(熊心山)에 머무르며 10여 일이 지나 내려오는데, 머리에는 오우관(烏羽冠)을 쓰고, 허리에는 용광검(龍光劍)을 찼다. 그리고 아침에는 인간 세상에서 살고, 저녁에는 천궁(天宮)으로 돌아갔다. 여기서, 해모수의 오룡거, 오우관, 용광검 등은 모두 태양이나 일광의 변형된 상징이다. 아침과 저녁의 거처가 다르다는 그의 거동 역시 하루 동안의 태양 운행을 상징하고 있다. 광개토 대왕의 비문에는 고구려의 시조 추모(鄒牟), 곧 주몽은 하느님의 아들로서 알에서 태어났다고 하였다. ‘모두루묘지(牟豆婁墓誌)’에도 그가 일월(日月)의 아들이라 하니, 일월의 ‘월(月)’은 자수를 맞추기 위한 허자(虛字)에 불과하므로 곧 태양의 아들이다. 이것은 중국의 사료인 삼국지(三國志) 위서(魏書)에도 주몽이 햇빛의 작용으로 잉태했다 하고, 논형(論衡), 후한서(後漢書) 등에도 유사한 뜻으로 기록되어 있다.

[왕권] 태양의 화신인 군왕에 관한 것은 주몽뿐만 아니라, 신라의 박혁거세(朴赫居世)와 김알지, 가락국의 김수로왕의 탄생에서도 나타난다. 혁거세가 태어날 때에는 하늘에서 땅으로 전광(電光)과 같은 빛이 수직으로 내려왔으며, 그 곳에 알이 하나 있었다. 이 알에서 나온 이가 바로 혁거세이며, 동천(東泉)에서 목욕시키니 몸에서는 광채가 나고, 일월도 청명(淸明)하였다고 한다. 그래서 ‘赫居世’란, “빛과 밝음으로 세상을 다스린다[光明理世].”는 뜻이다. 김알지는 금빛 찬란한 궤에서 태어났고, 김수로왕은 하늘에서 내려온 금합자에 든 알에서 태어났다. 이것으로 보아, 신화에서는 왕이 곧 태양이었고, 왕도 스스로 태양의 아들이라 하여 절대적 권능과 신성함을 나타내었다. 이 밖에, 태양에 관한 설화로 삼국유사, ‘동국여지승람’ 등에 전하는 ‘연오랑과 세오녀’ 이야기가 있다. 여기서, 태양과 달의 정(精)인 연오랑과 세오녀가 일본으로 갔기 때문에 신라에서는 빛을 잃었다고 하였다. 그리고 그 이름에 나타나는 까마귀 오(烏)는 바로 태양을 상징하는 삼족조(三足鳥)임을 알 수 있다.<曺喜雄>

Ⅲ. 무속·민속

[기복신] 동해안 별신굿 절차에 일명 세존(世尊)굿이라고 하는 ‘일월맞이굿’이 있다. 이것은 별신굿 진행에서 둘째 번에 행해지는데, “해 돋아 일월맞이, 달 돋아 월광맞이굿을 올린다.”는 사설로 시작하여 만사 형통의 축원으로 끝난다. 그런데 이 일월맞이굿을 달리 세존굿, 중굿이라 하는 이유는 일신(日神)이나 월신(月神), 세존이 모두 천상에서 내려온 신이기 때문이라고 하지만, 그 근원은 청배 무가(請拜巫歌)로 부르는 당금애기 풀이에서 찾을 수 있다. 즉, 당금애기가 태몽을 꾸는데, “한짝 어깨에는 해가 돋구, 한짝 어깨에는 달이 돋구, 하늘의 별 세 낱이 입으로 들어가구.” 한 것이 삼형제로 태어나며, 이들이 훗날 ‘삼제석(三帝釋)’이 된다. 이것은 풍습에서의 꿈풀이와도 연관된다. 또, 황해도의 무속에서도 이러한 일월맞이를 볼 수 있는데, 여기서는 일월대를 세운다. 이 일월대는 큰 소나무에 일월과 칠성의 무늬가 있는 일월명두(日月明斗)를 달고, 옥황선녀를 위한 치마 저고리와 일월성신을 위한 도포를 매단다. 그리고 “해는 따다 일월명두, 달은 따다 소슬명두.”로 사설을 시작하여 자손 만대의 부귀 영화를 축원한다. 이 같은 굿의 내용으로 보아, 우리의 무속에서는 태양이 신으로서 인간에게 복을 가져다 주는, 기복의 상징적 대상이었음을 알게 한다. 민간의 주술적 치료 방법에서, 아이들이 눈에 삼이 들었을 때, 아침에 태양이 떠오르는 것을 보게 하는 것도 같은 맥락에서 이해되어야 할 것이다. <曺喜雄>

Ⅳ. 풍습

[아들] 무속 신앙을 저변에 깔고 민간에 전래되는 꿈풀이법에는 태양이 남성을, 달이 여성을 상징하는 경우가 많다. 즉, 꿈에 태양을 삼키거나 달과 합쳐지는 것을 보면 아들을 낳고, 해와 달이 한꺼번에 방 안에 드는 꿈은 귀한 아들을 낳을 징조라 하였다. 반대로, 태양과 달이 떨어지는 꿈은 부모에게 근심이 생긴다고 하여 근신하였다.

[서조] 태양을 보는 꿈은 좋은 일이 있음을 예고하는 서조(瑞兆)로 믿었다. 꿈에 태양이 뜨고 구름이 걷히면 좋은 일이 있을 길조이고, 햇빛이 집 안을 비추면 귀인이 찾아온다고 하였다. 그런데 태양이 단독적으로 등장하는 것보다는 달과 결합되면 그 의미가 강해진다. 일월이 하늘에서 밝게 빛나는 꿈은 벼슬을 얻고, 일월이 처음 나오는 것을 보면 집안이 번성한다고 하였다. 또, 해와 달을 등에 지거나 가슴에 안거나, 보고서 절을 하는 꿈은 대길한 것으로 여겼다. 속담에서도 서조에 비견되어 쓰이는 경우가 많아, “9년 장마에 해 돋는다.”라든지, “구름이 지나면 해가 뜬다.”는 말이 있다.

[청춘, 진리] 태양은 청춘을 상징한다. “해가 서산에 기운다.”는 말은 사람이 늙어 죽을 때가 되었다는 뜻을 가지고 있다. “줄로 해를 잡아맨다.”는 말은 늙어 가는 청춘을 아쉬워한다는 뜻이다. 그러나 “해가 서쪽에서 뜬다.”는 속담은 세상의 이치가 뒤바뀐다는 뜻이니, 이 때의 태양은 진리를 상징한다 하겠다.<曺喜雄>

Ⅴ. 종교

[유교: 충과 효] 유교에서는 태양을 임금, 부모, 남편에 비긴다. 의리와 명분을 중시하는 ‘불사이군(不事二君)’, ‘불경이부(不更二夫)’와 통하는 것으로서, “하늘에는 해가 둘이 없고, 사람에게는 아버지가 둘이 없듯이, 신하에게는 임금이 둘이어서는 안 된다.”는 신조가 있다. 이는 태양을 임금과 부모에 비겨 동격으로 생각한 충효(忠孝) 사상의 발로이다.

[불교: 진리, 광명] 불경에서는 “사막의 아침에 떠오르는 태양의 불꽃은 오묘한 진리와 지혜와 같아 잡을 수 없다.”고 하였다. 이 태양의 형상을 조형(造形)으로 재구성해 나타내었는데, 불상의 광배(光背)가 대표적이다. 이 광배는 사바세계를 비추는 부처의 진리와 광명을 상징한다.<崔來沃>

Ⅵ. 동양문화

[국가의 영원함] 우리 나라의 태극기는 태양을 바탕으로 한 원과 음양의 이분법적 조화로 형성되어 있고, 중화 민국의 청천백일 만지홍기(淸天白日滿地紅旗)와 일본의 일장기(日章旗)는 태양을 구체적으로 그리고 있다. 청천백일 만지홍기의 백일은 하늘 한가운데에서 빛나는 태양을 상징하여 스스로 중화(中華)라 하였고, 일본도 태양의 제국이라 했다. 이렇게 한·중·일의 기에 나타난 태양은 “조국은 태양과 같이 빛나고 영원하다.”는 의미를 상징하고 있다.

[중국: 세발까마귀] 중국의 신화에서 태양은 황금색 세발까마귀[三足烏]로 나타난다. 그래서 태양을 양오(陽烏, 暘烏)라고도 한다. 옛날 하늘에는 10개의 태양이 떠 있어서 작열하는 열기로 사람이 타 죽었다. 그 때 예가 나타나, 흰색의 화살을 시위에 재어 태양을 향해 쏘자, 불덩이가 폭발하여 땅에 떨어졌다. 사람들이 달려가 보니, 그것은 화살에 맞아 죽은 거대한 황금색 세발까마귀, 즉 태양의 화신이었다. 이렇게 해서 하늘에는 1개의 태양만 남게 되었다.

[남편] 황도(黃道)의 해석에 의하면, 해는 남편과 연계되고, 달은 아내와 연계된다. 일식은 황제가 가려진 것을 상징하는데, 그가 황후의 영향을 너무 받는 것으로 풀이된다. 월식은 아내들이 남편에게 순종하지 않을 때에 생기는 것으로 되어 있다.

[일본: 광명] 일본의 ‘고지키(古事記)’에는 일신(日神) 아마테라스 오미카미(天照大神)가 천신 이자나기 노미코토의 왼쪽 눈에서 나왔다고 하였다. 그는 동생 스사노 오노미코토 때문에 화가 나, 하늘의 바위 굴[天石窟] 속에 들어가 문을 걸어 닫고 나오지 않았다. 그러자 온 세상이 캄캄해지고, 낮과 밤이 바뀌는 줄도 모르게 되어 혼란해졌다. 이에 하늘의 80만 신이 숙의 끝에 수탉들을 모아 울게 해 그가 다시 세상에 나오게 했다. 이로써 온 세상은 다시 빛으로 충만하게 되었다고 한다.<崔來沃>

Ⅶ. 역사·문학

[임금] 태양은 조선 시대 선비들의 시가에 나타난다. 삼동에 베옷 입고 암혈에 눈비 맞아/구름 낀 볕뉘도 쬔 적이 없건마는,/서산에 해 지다 하니 눈물 겨워하노라.<조식> 월출산이 높더니마는 미운 것이 안개로다./천왕 제일봉을 일시에 가리었다./두어라, 해 퍼진 후면 안개 아니 거두랴. <윤선도> 여기서 볕뉘, 해, 월출산 등은 임금이나 임금의 은혜[聖聰]를, 구름, 안개는 간신배를 상징한다. 태양이 유일무이한 존재로 높은 곳에서 따뜻한 빛을 온 세상에 보내듯이, 임금도 그러한 상징체로 생각했다.

[풍요, 자애] 태양은 임금이라는 도식적인 상징이 현대 문학으로 오면서 보편적 관념이나 개인의 심상에 비추어 노래되었다. 해는 모든 것에게 젖을 주었나 보다./동무여, 보아라./우리의 앞뒤로 있는 모든 것이/햇살의 가닥 가닥을 잡고 빨지 않느냐. <이상화, 비 갠 아침> 돌담에 속삭이는 햇발같이,/풀 아래 웃음짓는 샘물같이,/내 마음 고요히 고운 봄 길 위에/오늘 하루 하늘을 우러르고 싶다. <김영랑, 돌담에 속삭이는 햇발> 여기 피비린 옥루(玉樓)를 헐고,/따사한 햇살에 익어 가는/초가 삼간을 나는 짓자. <조지훈, 흙을 만지며> 이상화는 태양이 주는 풍요와 자양분을, 김영랑은 봄 햇살의 다정함을, 조지훈은 햇살 속의 휴식을 표현하고 있다. 이와 같이, 태양은 만물을 생육하는 어머니의 품이며, 그 품에서 만물은 영글어 가고 휴식을 취한다. 햇살의 자애는 결코 편벽되거나 조급하지 않다.

[영원성, 광명, 역동성] 태양은 태고의 영원과 함께 오랜 어둠을 물리쳐 깨뜨리는 희망으로서 존재한다. 머언 태고 적부터 훈풍을 안고 내려온/황금가루 화분(花粉)은 분분히 이글거리던 그 태양이로다.쬤처음 꽃이 생겼을 때,/서로 부르며 가리켜 조화(造化)를 찬탄하던/그 아름다운 감동과 면면(綿綿)한 친애를 아느뇨.<유치환, 오오랜 태양> 해야, 솟아라. 해야, 솟아라. 말갛게 씻은 얼굴 고운 해야, 솟아라. 산 너머 산 너머서 어둠을 살라먹고, 산 너머서 밤새도록 어둠을 살라먹고, 이글이글 앳된 얼굴 고운 해야, 솟아라.<박두진, 해> 살아서 설던 주검 죽었으매 이내 안 서럽고, 언제 무덤 속 화안히 비춰 줄 그런 태양만이 그리우리.<박두진, 묘지송> 동천이 불그레하다. 해가 뜬다. 시뻘건 욱일(旭日)이 불쑥 솟았다. 물결이 가물가물 만경창파(萬頃蒼波)엔 다홍 물감이 끓어 용솟음친다. 장(壯)인지 쾌(快)인지 무어라 형용하여 말할 수 없다. <박종화, 청산 백운첩(靑山白雲帖)> 유치환은 태고의 창조와 유구한 역사의 증인이던 태양을, 박두진은 억압과 탄압의 세월 속에서 다시 살아 숨쉬는 광명을, 박종화는 솟아오르는 태양의 역동성을 표현하고 있다.

[좌절, 상실] 아랫방은 그래도 해가 든다. 아침결에 책보만한 해가 들었다가 오후에 손수건만해지면서 나가 버린다.<이상, 날개> 날이 저문다./먼 곳에서 빈 뜰이 넘어진다./무한천공(無限天空) 바람 겹겹이/사람은 혼자 펄럭이고,/조금씩 파도치는 거리의 집들/끝까지 남아 있는 햇빛 하나가/어딜까 어딜까, 도시를 끌고 간다. <강은교, 자전(自轉) Ⅰ> 태양은 생명력의 상징이기도 하지만, 그 이면은 소실을 뜻하며, 좌절과 상실을 나타내기도 한다. 이상과 강은교의 경우는 이것이 두드러지게 형상화된 예이다.<曺喜雄>

Ⅷ. 현대·서양

[멀고도 영원한 사랑] 그리스 신화에서, 태양신 헬리오스(Helios)에게는 안 보이는 것이 없었다. 아레스와 아프로디테의 정사를 헤파이스토스에게 일러바친 것도, 데메테르에게 그녀의 딸을 납치한 포세이돈을 일러바친 것도 그였다. 그 복수로 아프로디테는 헬리오스로 하여금 바빌론왕의 딸 레우코테아에게 반하게 만들었다. 그러나 레우코테아의 언니 클리티에는 그보다 앞서 헬리오스의 사랑을 받은 적이 있었다. 이를 억울하게 여긴 클리티에는 아버지에게 고자질하여 동생을 죽게 만들었다. 헬리오스는 죽은 레우코테아를 향나무로 변신시켰다. 대신에 클리티에는 헬리오스의 사랑이 완전히 식은 것만 확인할 수 있었다. 그래서 그녀는 발가벗은 채 쓸쓸한 들판에 누워 9일간을 이슬과 눈물로 목을 축이며 아무것도 먹지 않았다. 마침내 몸은 땅에 뿌리를 내리고, 혈색은 빠지고, 사지는 변하여 광채 없는 나무 줄기가 되고, 머리는 아름다운 꽃송이로 변하여 그리운 헬리오스를 따라 고개를 돌렸다. 이 꽃이 해바라기이다.

[이상적 남성] 아폴로는 완벽한 남성미를 갖춘, 그리스`인들의 이상적 청년신이었다. 그의 명철과 예지를 높이 산 그리스`인들은 아폴로를 태양신으로 숭배하였다. 그는 젊음과 힘과 예능을 한몸에 지닌 궁술, 의료, 음악, 시, 예언의 신이기도 했다. 의학의 신 아스클레피오스는 그의 아들이고, 히포크라테스는 그의 자손이라 한다. 그리스 조각에서는 늠름하고 명랑한 나체의 청년으로서, 은(銀)으로 만든 활과 화살통을 메고 있거나 황금 리라를 들고 있다. 그의 성조(聖鳥)는 백조이고, 성수는 월계수이다. 그 유명한 델포이 신전은 그를 모신 곳으로, 이 신전에서 아폴로가 내린 신탁(神託)은 그리스인의 생활을 규정할 정도로 권위가 있었다.

[왕] 바빌론에서는 왕이 태양이었고, 잉카 제국과 이집트의 왕은 태양의 아들이었다. 그래서 왕은 머리에 햇빛의 관을 쓴 태양의 모습으로 묘사되었다. 그리고 유럽의 절대 왕정기에는 왕이 태양과 동격이었다. 그들은 절대 권력을 행사하고, 국가의 중심이었으며, 그의 위대함은 만방에 빛을 발하는 의지의 표현이었다. 프랑스의 루이 14세는 스스로 태양왕이라 불렀다. 이것은 천상의 태양이 하나이듯, 지상에는 프랑스 황제만이 유일하며, 여타의 유럽 국왕들은 한낱 주위를 맴도는 위성에 불과하다는 생각에서였다.

[창조, 신성, 영광, 질서, 자유 의지] 태양은 구약 성서에서 여호와의 창조 능력을 상징하고 있다. 또, 하느님의 아들 그리스도를 ‘정의의 태양’이라 부른다. 그래서 성스러운 주일을 태양의 날(Sunday)이라 하였다. 이와 같이 신과 신의 창조를 상징하는 태양은 신성, 권위, 아름다움의 이미지로 회화에도 나타나, 그리스도나 성모 마리아, 부처, 마호메트, 그리고 호머나 버질 같은 대시인을 그릴 때에는 태양의 변형인 후광을 몸에서 내비치게 하여 영광을 상징하였다. 태양은 만물을 비추고 세상의 운행을 다 알고 있다는 뜻에서 만능, 직관, 지혜, 진리도 상징한다. 또, 태양이 뜨고 지는 것은 가장 규칙적이며, 예측할 수 있는 현상이므로, 절대의 신뢰와 불변의 우주 질서를 상징한다. 그리고 위대한 나그네, 고독한 탐험가, 자기의 길을 가는 자유 의지를 상징한다.

[생명의 원천, 권력 권화, 신의 눈] 태양 숭배가 가장 발달한 곳은 멕시코와 페루였다. 엘리아데(Eliade,M.)는 태양 숭배야말로 인간의 역사적 존재 양식의 발달과 병행하는 것으로 보았다. 생명을 주는 원천, 세계를 밝히는 빛으로서, 인간에게 신같이 보고 깨닫는 힘을 주고, 질서 의식을 찾아 주는 태양은, 같은 남성 원리인 정치 권력의 더없는 상징으로서 지금도 위력을 지니고 있다. 고대 이집트와 로마, 근대 프랑스에서 최고 권력의 권화는 태양 이미지의 강력한 지원을 받았다. 특히, 현대 북한 정권의 ‘수령’ 부자의 이름에 태양[日]이 들어 있을 뿐만 아니라, 그들 부자를 호칭할 때에 태양이라는 수식어를 사용하고 있다. 피그미족과 부시맨에게 태양은 가장 위대한 신의 눈이다. 사모예드족은, 해는 좋은 눈으로, 악령과는 다른 눈으로 구별했다. 그러나 동서 사상계에 깊은 영향을 준 인도 고전 리그베다에서의 태양은 양의적인 존재이다. 생명의 충만과 검은 것, 보이지 않는 세계를 동시에 표상했다. 태양이 말이나 뱀 등 장례식에 쓰이는 동물과도 관련이 있는 것은 그 때문이다. 삼손, 헤라클레스, 지그프리트 같은 영웅의 죽음은 해의 돌연한 잠적과 관련지어졌다. 연금술에서는 태양이 정상으로 떠오르기까지의 고된 과정을 검은 원형 물질이 백열화하고 붉은색을 발하며, 마침내 황금이 되는 과정으로 상징화되었다. 보들레르는 그의 서한집에서 이러한 이미지를 바그너의 음악을 예찬하는 데 쓰고 있다.<李昌培>

Ⅸ. 도상

[삼족오] 고구려 고분 벽화에는 일월상(日月象)이 그려져 있다. 태양 속에는 세발까마귀[三足烏]가 들어 있는데, 이 삼족오는 태양의 상징이다. [장생불사] 장생 불사를 상징하는 열 가지 물건 중에 태양이 들어 있다. 이 십장생 그림을 궁전이나 관청 건물에 표현한 까닭은 지상 최고 권좌의 상징으로서, 또 관리들에게 공명 정대한 행정을 펼 것을 촉구하는 뜻에서이다.<林永周> (자료 출처 : 동아대백과 사전에서)

출처 : 추억속으로
글쓴이 : 그림자 원글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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