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림도령의 혼령을 저승으로 데려간 염라대왕은 강림도령에게 하나의 시험을 내렸다.
오랫동안 골치를 썩고 있는 문제였다.
죽을 날이벌써 지났는데도 어찌나 감쪽같이 몸을 숨기는지 삼천 년 동안이나 잡아오지 못하고 있는 동방삭을 찾아내 잡아오라는 명이었다.
동방삭을 잡으러 나선 강림도령은 동방삭이 나타난다고 알려진 곳을 찾아가서는 냇가에 퍼질러앉아 검은 숯을 냇물로 발강발강 씻기 시작했다. 지나는 사람마다 그 모습을 보고 의아하게 생각해서 물으면,
“검은 숯을 백일 동안 씻으면 하얀 숯이 되어 세상에 드문 약이 된다고 해서 이러고 있지요.”
하고 대답했다.
어느 날 백발노인 하나가 지나가다 그 말을 듣고서는 허튼 웃음을 던지며 핀잔을 주었다.
“이놈아, 내가 삼천년을 살았어도 그런 말을 들어본 적이 없다.”
그러자 강림도령은 득달같이 달려들어 포승줄로 노인을 꽁꽁 포박했다.
삼천년이나 저승차사를 피해다니던 동방삭은 그렇게 강림도령에게 잡혀서 꼼짝없이 저승으로 끌려오고 말았다.
염라대왕은 강림도령에게 세상 사람들을 정해진 수명에 맞춰 저승에 데리고 오는 과업을 맡겼다.
“인간 사람 남자는 칠십, 여자는 팔십이면 차례차례 저승으로 불러와라.”
염라대왕의 명이 담긴 적패지를 받아든 강림도령이 인간세상에 나오다가 나무 그늘에서 잠시 쉬고 있을 때였다. 까마귀가 날아와 까옥까옥 울면서 말을 걸었다.
“형님아, 그 적패지를 나한테 주면 내가 날아가 세상에 붙여두고 오겠습니다.”
강림도령이 그러지 않아도 귀찮던 차에 그 말을 듣고 선뜻 적패지를 내어주니 까마귀가 강림도령 대신 적패지를 물고서 인간세상으로향했다.
까마귀가 한창 날아가고 있는데 한쪽에서 백정이 말을 잡고 있는 모습이 보였다.
까마귀가 말 피 한 점을 얻어먹고 가려고나무에 앉아 까옥까옥 울음을 울자 백정이 기분이 나빠서 말발굽을 잡아서 휙 던졌다. 깜짝 놀란 까마귀는 펄떡 날다가 적패지를놓치고 말았다.
마침 담구멍에 얼굴을 내밀고 있던 백구렁이가 적패지를 꿀꺽 삼켜버리니 그 이후로 뱀은 아홉 번 죽어도 열 번환생하게 되었다. 뱀이 적패지를 삼킨 것을 알 리 없는 까마귀는 근처에 있던 솔개한테 시비를 걸었다.
“내 적패지 달라, 까옥!”
“못 보았다, 뺑고로록!”
그렇게 내쳐 싸우니 그것이 까마귀와 솔개가 지금껏 원수지간으로 지내게 된 시초가 되었다.
끝내 적패지를 못 찾은 까마귀는 인간세상에 날아와 생각나는 대로 마구 지저귀기 시작했다.
“아이 갈 데 어른 가십시오. 어른 갈 데 아이 가십시오. 부모 갈 데 자식 가십시오. 자손 갈 데 조상 가십시오. 조상 갈 데 자손 가십시오.”
이렇게 말해 버리니 이후로 세상 사람들이 앞뒤 순서 없이 죽어가게 되었다.
그 일을 알고 화가 난 강림도령이 까마귀를 잡아서 보릿대 형틀에 묶어놓고 밀대 곤장으로 아랫도리를 때리니, 그때부터 까마귀는 똑바로 걷지 못하고 아장아장 걷게 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