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 신화/삼승할망 본풀이

[스크랩] *우리신화 속 `하늘줄`

실나비 2012. 6. 13. 12:57

 

 

우리 신화에는 여기 저기에 많은 줄을 볼 수 있다.

'해와 달이 된 오누이'에서 오누이가 호랑이에 쫓겨 도망갈 때 하늘에서 내려왔다는 동아줄 이야기나,

'나무꾼과 선녀' 두레박줄이나 여섯 가락국의 창업자들을 담은 금빛 그릇에 달려 내려온

자줏빛 줄 이외에도 무속신화 '제석본풀이'를 보면 당금애기의 세 아들은 아버지가 남기고 간

박씨를 심어 그 줄을 타고 아버지를 찾아간다.

 

하루에 천길 만길을 뻗는 박 넝쿨을 타고 아버지 천지왕을 찾아 하늘로 올라가는

제주도 무속신화 '천지왕본풀이'의 대별왕 소별왕 형제도 마찮가지다.

역시 제주 신화 '세경본풀이'의 문도령이나 주모할머니가 하늘을 오를때 이용하는

탈것도 이다.

 

삼승할망이 하늘에 오를때 탄 '하늘줄'은 탯줄의 변형의 의미로 볼 수 있다.

잉태와 출산, 양육을 관장하는 제주도의 삼승할망의 줄은 어머니와 닿은 무의식속

생명줄 '노각성자부줄' 이라는 이상한 이름을 가지고 있다.

 

제주의 삼신할미인 삼승할망의 기원신화 '삼승할망본풀'의 이야기를 보면

인간세상의 잉태와 출산, 양육을 관장하는 삼승할망일을 하러온 동해용궁 따님애기가

제 노릇을 못하자 인간세상 멩진국(또는 명진국)따님애기가 옥황상제에게 뽑혀간다.

 

멩진국따님아기는 옥황의 시험을 간단히 통과하고 지상에 삼승할망으로 내려온다.

두 따님애기는 도중에 만나 당연하게도 옛삼승 동해용궁따님애기새 삼승 멩진국따님애기 사이에

자리를 두고 다툼이 일어난다.

다툼은 끝을 맺을 줄 모르고 둘은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옥황상제에게 올라가 누가 더

유능한 신인지 겨루기를 한다.

 

내력을 들은 옥황상제는 두 따님아기에게 꽃가꾸기 내기를 하여 이기는 쪽에 생명을 점지하고

탄생시키는 삼승할망의 자격을 주겠다고 한다.

두 따님아기는 모래밭에 꽃을 가꾸었는데, 멩진국(명진국)따님아기 꽃이 활짝 피었다.

옥황상제는 내기에서 이긴 멩진국따님아기를 새 삼승으로 임명하고 인간세상에 나가

아기를점지해 주도록 한다.

그대신 동해용왕 따님아기에게는 저승으로 가서 일찍 죽은 아이들의 넋을 달래는

구삼승할망이 되라 한다.

 

멩진국 따님아기는 삼승할망이 되어 생불꽃, 환생꽃을 지니고 부지런히 돌아다니며,

그 꽃으로 인간에게 아기를 점지해주고 해산까지 도맡는다.

그리고 동해용왕 따님아기는 병을 주고 잡아가 그 영혼을 관장하는 신이 된다.

그래서 후에 멩진국 따님아기는 삼승할망, 생불할망, 인간할망이라 불리고

동해용왕 따님아기는 구삼승할망, 저승할망이라 불리게 되었다고 한다.

 

즉, 이 신화속에서 멩진국 따님애기가 하늘을 오르내릴 때,

그리고 두 따님애기가 우열을 가리기 위해 옥황에 올라갈 때 '노각성자부줄'을 이용했다는 점이다.

 

'삼승할망본풀이'와 다르지만 비슷한 이야기가 제주도 조천읍 와산리 불돗당의 내력을

들려주는 '불돗당본풀이'이다.

지상의 인간인 삼승할망과 달리 이 본풀이(신화)당신 불도삼승또는 본래 옥황상제의

막내딸이었는데 부모의 말씀을 거역하여 인간세상에 귀양 온 존재다.

그렇지만 불도삼승또 역시 자식 없는 자손들에게 자식을 점지해 주고 키워주는 신이기에

삼승할망과 동업자이다.

불도삼승또는 당신·조상신이면서 삼신할미의 역할을 겸하고 있는 셈이다.

이 딸애기 또한 노각성자부줄을 타고 내려온다.

 

두 신화에서 '노각성자부줄'이 하늘을 오르내리는 줄이지만 동시에 산육신(産育神 : 낳을 산, 기를 육, 귀신 신)인

삼승할망과 뭔가 관계가 있는 줄이라는 것을 알 수있다.

'불돗당본풀이'를 들어보면 불도삼승또가 와산리 당오름(신당이 있는 산봉우리)에 내려올 때

산봉우리의 큰 바위에서 피가 흘러 내렸다고 한다.

이 피는 산육신인 불도삼승또를 상징하는 피일것이다.

불도삼승또가 담당하는 출산에서 동반된 출혈을 상징하는 피로 볼수있다.

노각성자부줄과 삼승할망의 관계에 대한 유력한 단서이다.

 

태초의 인간이 돌에서 나왔다고 하는 신화가 세계적으로 분포되어 있다는 것과

엘리아데의 '대장장이와 연금술사'에서 돌이 태아를 상징했다는 점.

현제 불돗당에 모시고 있는 불도삼승또의 신체(神體 : 귀신 신, 몸체)가 큰바위 인데

아마 불도삼승또가 내려온 봉우리의 피를 흘리던 바위와 동일시된다.

 

노각성자부줄에는 이 줄 한쪽 끝을 천신이 붙잡고 있다는 사실인데,  제주도 무속신화의 줄들은

하나같이 옥황상제에게 닿아 있다.

'삼승할망본풀이'나 '불돗당본풀이'만이 아니라 '천지왕본풀이''세경본풀이'줄도 옥황상제의 옥좌에

연결되어 있다.

탯줄의 변형이라면 어머니에게, 세계를 창조한 대지의 여신이나 하늘의 여신에게 닿아야 할 줄이

남성신인 옥황상제의 권좌에 연결되어있다는 점인데 '줄의 왜곡' 즉, 줄 이미지의 역사적 변형이 있다.

어머니를 향한 줄이 아버지를 향한 줄로 변형된 것이다.

 

천지왕이 지상의 총멩부인과 짝을 이뤄 낳은 소별왕과 대별왕,

석가여래가 지상의 당금애기와 낳은 삼형제는 왜 굳이 아버지와 연결된 줄을 따라 아버지를 찾아갔을까?

주몽을 찾아 부러진 칼을 맞춰보고 왕위를 계승한 고구려의 유리처럼 이들도 아버지를 통해 스스로의 정체를

확인하려고 했던 것이다.

아버지가 중심인 사회에서 어머니들이 아닌 아버지의 아들로 인정받으려고 했던것,

신화의 질서는 현실의 질서를 무시하는 듯 하지만 역설적이게도 현실의 질서를 깊이 투영하고 있다.

 

노각성자부줄이 삼승할망들의 줄이면서 동시에 옥황상제와의 관계를 상징하는

하늘줄일수 밖에 없는 이유가 여기에 있다.

현실과 질서를 받아들인 제주도 신화의 신성한 족보는 최고신 옥황상제(천지왕) 아래 삼승할망과 같은

여신들이 자리잡은 모습으로 짜여져 있기 때문이다.

 

출처 : *고자질하는 심장*
글쓴이 : 노아 원글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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