먼옛날, 아직 고조선이나 고구려같은 나라가 생겨나기 오래 전,
한반도 북쪽에 불라국이라는 나라가 있었다.
그 나라는 오구대왕이라는 젊은 임금이 다스리고 있었다.
대왕은 길대부인과 결혼을 하게 되었는데, 그 용모와 인품이 마음에 꼭들었다.
대왕은 다음 해에 결혼하면 좋은 일이 생긴다는 점장이의 말을 외면하고 바로 길대부인과 결혼을 하였다.
견우와 직녀가 상봉하는 칠월칠석날 이었다.
오구대왕은 길대부인과 금슬좋게 살면서 나라를 잘 다스렸다.
태평한 세월이 이어졌다.
그런데 한가지 걱정이 생겼으니, 아이가 태어나지 않는 것이었다.
결혼한지 서너 해가 되도록 길대부인에게는 태기가 없었다.
대왕부부는 고민끝에 명산대해에 기도를 드리기로 하였다.
백일동안 정성을 드린 결과 결혼 다섯 해 만에 드디어 길대부인이 아기를 잉태하였다.
부인은 잔 뼈가 녹는듯, 굵은 뼈가 휘는듯 힘들었며, 밥에서 생쌀냄새가 나고 해물에서 바다냄새가 나서 음식을 먹을 수가 없었다.
그러나 아이를 가진 기쁨은 이루 말할 수 없었다.
길대부인은 몸가짐을 정히 하고 정성을 다하였다. 열달 만에 아기가 태어났는데 왕자가 아닌 공주였다.
대왕은 내심 서운한 마음이 없지 않았지만 '나라에 보배가 태어났다'면서 즐거워했다.
그러면서 하늘이 준 귀한 아기란 뜻으로 '천상금이'란 이름을 지어주었다.
첫아이를 낳은 길대부인은 그 후 해마다 아이를 하나씩 낳았다.
그런데 낳은 아이마다 딸이였다. 그렇게 낳은 딸이 여섯이었다. 대왕은 그 때마다 아들을 기다렸지만 딸도 좋다고 하면서 좋은이름을 지어주었다.
둘째딸은 지상의 귀한 아이라고 '지상금이', 셋째는 해처럼 귀하다고 '해금이', 넷째는 '달금이' 다섯째는 별금이라고 지었다. 여섯째는 좋은 짝을 만나 다정하게 살라고 '원앙금이'라고 지었다.
딸들의 재롱에 행복해하면서도 대왕은 점차 서운한 마음을 드러내곤 하였다.
'나는 왜 이리 박복해서 아들 하나 얻지 못할까. 누가 내 뒤를 이을꼬.?'
공주를 낳을 때 마다 마음이 편치 않았던 길대부인은 그런 말을 들을 때 가슴이 덜컥 내려앉는 것이었다.
'제발 아들을 낳아서 대왕님을 기쁘게 해드리고 나라의 근심을 없애야 할텐데..'
다음해에 길대부인은 또 아이를 가졌다.
'제발 아들이어야 하는데..' 그런데 이번엔 길대부인도 믿는 구석이 있었다.
태몽꿈이 신기했던 것이다.
양쪽 어깨에 해와 달이 올라앉고 오른손에 보라매 왼손에 백마가 보이고 왼 무릎에 흑거북이 앉아있는 것이였다. 꿈이야 허망한 것이라고 생각하면서도 꼭 대단한 왕자 아이가 태어날것 같았다.
꿈이야기를 들은 오구대왕은 왕자가 분명하다며 미리부터 기뻐하였다.
길대부인은 마음 한편의 불안을 감추면서 몸가짐을 조심하고 태교에 열중하였다.
석달, 넉달,... 드디어 열달이 되었다.
그러나 어쩐일인가, 또 딸을 낳은 것이였다.
아이가 딸이라는 말을 들은 순간 꿋꿋이 산통을 견뎌냈던 길대부인은 그만 자기도 모르게 통곡소리를 내고 말았다. 자신이 박대받을 일보다도 남편이 낙담할 것이 마음에 걸렸다.
무엇보다도 아이의 운명에대한 불길한 예감이 한순간에 몰아쳐왔다.
난데없는 통곡소리는 바람을 타고 임금님 귀에 까지 이르렀다.
"이게 왠 통곡소리란 말이냐, 얼른 고하거라"
그리고 길대부인이 또 공주를 낳았다는 말을 들은 오구대왕은 하늘이 깜깜해 졌다.
기대가 컷던만큼 실망이 컷다. 그 실망은 누구인지 모를 대상에 대한 분노로 바뀌었다.
"하늘도 무심하시지. 내가 무슨 죄가 있어 이리 날 괴롭히시는가"
자기화에 취한 대왕은 자기도 모르는 사이에 신하들에게 명령을 내렸다.
"종묘사직을 이제 누구에게 의지하리, 내가 죄가 많아서 이런 벌을 받는구나. 이번 딸아이는 얼굴도 보고싶지 않다. 서해 바다에 띄워서 용왕께 진상으로 보내거라"
그말을 들은 신하들이 깜짝 놀라서 명을 거두어 달라고 하였다.
그러나 대왕은 오히려 버럭 화를 내는 것이었다. 대왕의 명을 전해들은 길대부인은 불길한 예감이 그대로 맞아떨어진것에 하늘이 무너지는것 같았다.
길대부인은 아기를 낳은 불편한 몸을 이끌고 임금에게 간청하였다.
"제발 우리아기를 살려주세요. 아이를 낳은 것은 저니까 차라리 저를 내쫓으세요. 아이를 버리면 저도 더이상 살지 않겠습니다."
오구대왕은 마음이 매우 언짢았지만, 그냥 못들은 척 외면하고 말았다.
" 이 갓난애를 어떻게 버린단 말입니까? 제발 젓먹을 동안만이라도 같이 있게 해주세요"
"알겠소, 그렇지만 아이가 젖을 떼는데로 명을 시행시킬것이오"
겨우 처소로 돌아온 길대부인은 눈물로 밤을 세웠다.
아기는 참으로 예쁘고 영리했다. 길대부인은 아이를 보면서 툭하면 눈물을 보였다. 아기는 이유를 아는 듯 모르는듯 물끄러미 엄마를 보다가 방긋 웃었다. 그런모습을 볼때마다 길대부인의 마음은 비수로 찔리는듯 아팠다. 그 아픔은 어느새 심병이 되고 말았다.
오구대왕은 냉정하게도 한번도 일곱째공주를 보지 않았다.
이름도 지어주지 않았다. 그럭저럭 한해, 두해가 지나갔다. 아이의 젖을 뗄 무렵이 되었다.
부인은 계속 젖을 먹이려 했지만 더이상 젖이 나지 않았다. 어느날 오구대왕은 신하를 시켜 이제 아이를 서해바다에 띄워 보내라는 명령을 내렸다.
분부를 전해들은 길대부인은 울다울다지쳐 공주를 떠나보랠 차비를 하였다.
평소에 아이를 재우던 요람에 포대기와 옷, 양말을 채곡채곡 챙겨넣었다. 그리고 아이가 즐겨 매만지던 자기저고리 옷고름을 찢어서 정표로 넣어 두었다.
그러나 차마 공주를 요람에 넣을 수 없었다. 그저 아이를 안은 채 눈물을 흘릴뿐, 시녀들 누구하나 눈물을 흘리지 않는 사람이 없었다. 드디어 새벽닭이 울었다.
"닭아 울지마라 네가 울면 불쌍한 우리 공주. 영 이별이란다."
신하와 시녀들이 아이을 요람에 넣어서 길을 떠나려 할 때, 길대부인이 소리쳐 불렀다.
"여봐라, 아무리 버리는 공주지만 그래도 이름은 지어줘야하지 않겠느냐"
부인은 공주를 보면서 말했다.
"이름을 무어라고 지을거나. 부모한테 버림받는 운명이라니...그래 '바리공주'라고 하마. 네이름을 마음에 두고 널 버린 죄를 평생 잊지않으련다."
울다 지친 길대부인은 결국 정신을 잃고 쓰러졌다.
신하와 시녀들이 바리공주를 안고 간곳은 갈대가 우거진 서해 바닷가였다.
신하들은 용왕님께 제사를 지낸후 뚜껑을 해 씌운 요람을 바닷물 위에 띄웠다. 때는 늦은 가을이었다.
마침 물결은 고요하고 동풍이 건듯 불어왔다.
물위에 뜬 요람은 바람을 타고서 차츰차츰 물에서 멀어져 바다로 흘러갔다.
신기한 것은 요람이 물에 젖어 가라앉지를 않고 너울너울 떠가는 것이었다. 멀리 시야에서 요람이 사라지자 신하와 시녀들이 눈물을 씻으며 돌아섰다. 그 광경을 구경하던 백성들이 혀를 끌끌 찼다.
"아무리 임금이지만 제 딸을 갖다 버리다니, 사람으로서 못할 짓이야."
"쯧쯧, 딸로 태어난게 무슨 죄람."
"천벌이 안내리면 다행이지."
바리공주를 떠나보낸 후 길대부인은 시름으로 세월을 보냈다. 세상을 다 잃은것 같았다. 열손가락 깨물어 안 아픈게 없다더니, 딸 여섯이 남아 있었지만 세상이 텅 빈것 같았다.
자리에 누으면 바리공주의 모습이 보였다.
마음이 안좋기는 오구대왕 또한 마찬가지였다.
공주를 버린 후로 온갖일에 의욕을 잃었으며 몸이 수척해 졌다.
그렇게 몇년이 지나던 어느날 오구대왕은 마침내 자리에 눕고 말았다.
갑자기 기운이 빠지면서 쓰러진 후 다시는 일어서지 못하였다. 정신이 나간 사람처럼 눈이 퀭해진 대왕은 점점 말수가 줄어들더니 급기야는 거의 말을 못하는 지경이 되었다.
온나라의 의사들이 다 모여서 좋다는 약을 써 보았지만 병세는 점점 나빠져만 갔다.
길대부인은 이는 자기탓이라고 하면서 정성껏 간호했지만 소용이 없었다. 조정이 온통 근심에 빠졌다.
임금이 병에들자 나라사정도 안 좋아지고 백성들의 생활이 어려워졌다.
백성들은 삼삼오오 모여서 말하였다.
"이게 다 하늘이 점지하신 공주님을 함부로 내다 버린 죄값을 치르는 거야"
"그러나 저러나 빨리 임금님이 쾌차하셔야 나라가 제자리를 잡을 텐데 큰일이야."
그상태로 몇년이 흘렀다. 어느날 길대부인이 수심에 잠겨 뜰을 거닐고 있는데 난데없는 염불소리가들렸다.
"나무아미타불 관세음보살"
'이곳은 나는 세도 들어오기 힘든 궁궐 깊은곳인데 왠 스님일까?'
이상히 여긴 부인이 시녀를 시켜 스님을 청하였다.
스님은 나라안에서 보지못한 낯선 차림새를 하고있었다.
"어디서 오신 스님이신지요?"
"소승은 서역국 사람으로 세상을 방랑하면서 수도하고 있습니다. 하루 끼니를 때울 곡식시주를 청하러 왔으니 살펴주십시오"
그 복색은 허름하지만 말소리가 그윽하고 눈빛이 예사롭지 않았다. 길대부인은 몸소 곳간으로 들어가 가장좋은 백미쌀을 한 말 퍼다가 스님의 바랑에 넣어 드렸다.
"나무관세음보살"
공손히 사례한 스님이 한마디 덧붙였다.
"보아하니 나라가 어수선하고 부인의 얼굴에 수심이 가득찼으니 무슨 연고인가요?"
길대부인은 한숨과 함께 자초지종을 말해주었다.
"스님, 스님은 세상을 많이 돌아다니셨으니 임금님의 병을 고칠 방법을 아시지 않겠습니까? 부디가르쳐 주십시오."
스님이 하늘을 쳐다보더니 지나가는 말처럼 한 마디하였다.
"방법이 있기는 있는데..."
그말을 들은 부인이 화들짝 놀라 스님에게 매달렸다
"정말 방법이 있다는 말씀입니까? 부디 가르쳐 주십시오."
"그게 너무 어려운 일이라서....대왕님의 병은 인간세상의 약으로 고칠수 있는 것이 아닙니다. 저승세계에 약수를 구해다 써야만 고칠수 있지요."
길대부인은 자세히 알려달라고 청하였다.
"저 서쪽으로 서역국을 지나서 황천바다를 건너면 저승세계가 있답니다. 그 저승 입구의 동대산에 가면 동수자가 약수를 지키고 있답니다. 하지만 인간의 발길이 미칠수 있는 곳이 아니지요. 그럼 이만."
스님은 효연히 사라져갔다.
길대부인은 곧장 궁궐로 들어가 신하들에게 이 이야기를 들려주었다.
그러나 누구 한사람 나서려는 자가 없었다.
"서역국만 하더라도 몇달이 걸리는 먼먼 길입니다. 하물며 저승땅이라니요"
"거기는 산사람이 도저히 못가는 곳입니다."
"온갖 약이 다 소용없는데 약수라고 되겠습니까? 더군다나 근본도 모르는 걸승의 말을 어찌 믿겠습니까?"
길대부인은 맥이 탁 풀렸다.'아무도 갈사람이 없단말인가? 내가 몸이 조금만 건강했더라도..' 그러나 길대부인은 몸이 쇠약하여 오래서있기조차 힘들어 했다. '그렇지, 우리 딸들하고 상의해 보자.'
부인은 급한 마음에 여섯딸을 불러 모았다.
여섯딸은 벌써 다 좋은 짝을 만나 결혼해 살고 있는 중이었다.
딸을 불러모은 길대부인은 스님의 말을 전하면서 딸들에게 말했다.
"신하들이란 자들이 다들 저승은 못갈 곳이라며 나서질 않는구나. 그래도 하는데까지 해봐야 하지 않겠니. 너희들이 부친은혜로 지금껏 살아왔으니 한번나서보지 않으련?"
그러면서 첫째딸 천상금이를 바라보았다.
그러자 첫째딸이 대뜸하는 소리가
"아이고 어머니, 저승가서 약수를 구할 것 같으면 죽는 사람하나도 없겠습니다. 괜한 미련 갖지 마시고 정신차리세요. 지금은 아버님이 돌아가신 다음 나라와 재산을 맡길 일을 걱정할 때란 말입니다."
부인이 다시 지상금이를 바라보자
"항상 모든일에 언니만 우선하더니 어려운 일이 생기니 저보고 가라고요? 난 못해요"
해금이는 "저는 이제 아이 낳은지 한달밖에 안됬어요"
달금이는 "우리 시부모님이 호랑이인것 아시잖아요. 말도 못꺼낼 걸요."
별금이는 "이제 한달 후면 시누이가 시집을 가는데 제가 없으면 안돼요"
막내 원앙금이는 "어머니, 이제 막 시집가서 남편하고 정이 들똥말똥한데 어딜 갑니까? 그런말씀하지도 마세요"
길대부인이 길게 탄식했다.
"그래 다 소용없다 말한 내가 바보지"
그러고는 가슴에 일곱째딸이 모습이 떠오르는 것이었다. '이게 다 자식을 내다버린 죄로구나. 살았는지 죽었는지.말은 못해도 얼마나 부모를 원망했을 까. 살았으면 벌써 열여섯일텐데..'
다음날이었다.
며칠동안 아무 말이 없던 오구대왕이 무언가 말을 꺼낼듯 입을 달싹거렸다.
길대부인과 신하들이 모여들자 오구대왕은 힘들게 말을 이었다.
"내가 큰죄를 지었다. 내다버린 막내 공주가 보고싶구나."
그말과 함께 눈에서 두줄기 눈물이 흘러내렸다.
갑자기 대궐안이 분주해졌다. 어서 바리공주를 찾아보자는 의견이 돌았다. 죽은것이 분명한데 다 허사라는 의견도 많았다. 바다에 떠내려간 공주를 어찌 찾겠느냐는게 중론이었다.
그때 벼슬이 낮은 한 시종이나섰다.
지난번 길대부인이 약수를 구하러 갈 사람을 찾을때 머뭇거리다 나서지 못했던 사람이었다.
"그래도 최선을 다해야 하지 않겠습니까? 소인이 정성을 다해서 죽은 시신이라도 찾아오겠습니다."
길대부인이 그 시종의 손을 잡고 고마워했다.
"고맙소 내 이 은혜잊지 않으리다."
시종은 바리공주를 찾아 길을 나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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