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 신화/창세가

우리의 창세신화에서 인간은 하늘에서 떨어진 벌레 열 마리로 출발.[김쌍돌이본]

실나비 2011. 5. 3. 05:34

‘옛날 옛 시절에/ 미륵님이 한짝 손에 은쟁반 들고/ 한짝 손에 금쟁반 들고/ 하늘에 축사하니/ 하늘에서 벌레가 떨어져/ 금쟁반에도 다섯이고/ 은쟁반에도 다섯이라/ 그 벌레 자라나서/ 금벌레는 사나이 되고/ 은벌레는계집으로 마련하고/ 은벌레 금벌레 자라와서/ 부부로 마련하여/ 세상사람이 낳았어라.’
우리의 창세신화에서 인간은 하늘에서 떨어진 벌레 열 마리로 출발했다.물론 적당한 시간이 되어 저절로 생겨났다거나, 흙으로 빚었다는 이야기도있지만 그건 중국 등 외래신화의 영향을 받은 흔적이 있다.

구비문학을 전공하고 있는 신동흔 건국대 교수가 ‘살아 있는 우리 신화’로 그리스 로마 신화나 중국 신화의 위세에 눌려 있는 우리 무속신화를 대중적으로 소개했다. 전문 연구서나, 어린이 그림책으로 우리 신화를 다룬책들이 없는 건 아니지만, 일반 교양서로 읽기에는 너무 넘치거나 모자라는 형편이어서 반갑다.

책에는 옥황상제 천지왕과 총명부인, 옥황상제의 두 아들 대별왕과 소별왕, 옥황상제를 보필하는 번개장군, 벼락장군, 화덕진군, 풍우도사 등 하늘의 신과 지하국 최고신 지부사천대왕, 매화부인, 지탈부인, 지진장군, 저승의 신들인 염라대왕, 저승차사, 그리고 저승차사에 끌려 황천수를 건넌영혼의 죄와 한을 눈물을 씻어주는 오구신 바리 등이 등장한다.

또 용왕과 파도장군, 해일장군 등 물의 신과 당금애기, 삼불제석, 마고할미, 대별상 어전또, 소천국 등 땅위의 신 등 78명의 신들이 엮어내는 우리신화의 드라마틱한 이야기들이 담겼다.

신 교수는 우리 신화의 가장 큰 특징으로 인간적인 면모를 꼽았다. 그것도 잘난 체하고, 약한 자를 억압하는 지배층이나 권력자가 아니라 소박하고 서민적인 모습이다.

“우리 민간신화가 펼쳐낸 신성세계의 결과 질감은 서구신화와 다르며 중국이나 일본의 신화와도 다르다. 그리스 로마 신화에서와 같은 화려함을찾아보기 힘들며, 중국 신화 같은 데서 자주 보는 기괴하고 험상스러운 모습과 만나기 어렵다.”

이유는 신으로 좌정한 존재들이 애초 인간으로 태어나 세상사의 고락을 짊어지고 헤쳐낸, 그래서 인간의 한계를 절감하는 이들이기 때문이다. 그래서 우리 신에는 유난히 고난과 시련의 이미지가 뚜렷하고, 그 시련을 이겨내는 과정이 이야기의 큰 줄거리가 된다고 설명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