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주도의 신화와 굿
제주섬의 신을 말할 때 흔히 ‘1만8천 신들’이라고 표현한다.
왜 하필이면 1만8천일까. 그것은 실제 숫자의 개념이 아니다.
‘그토록 많음’을 뜻하는 상징적인 기호인 것이다.
신들의 이야기는 제주의 굿을 통해 그 내력을 들여다 볼 수 있다.
신들의 이야기를 ‘신화’라고 하는데, 제주사람들은 ‘본풀이’라고 한다.
본풀이는 말 그대로 ‘본(本)을 푸는 것’이다.
본풀이는 굿을 할 때 부르는 굿본이다.
굿법이며 신법이고 저승법이다. 우주적 질서이며 신의 질서다.
굿법으로 질서를 바로잡는 것이 굿이다.
본풀이에는 ‘신화시대에 낸 법으로 오늘날 어떤 굿을 하게 되었다’는
이야기가 반드시 들어가 있다.
제주사람들은 굿을 통해서 저승의 맑고 공정한 법으로 악, 부적, 병,
죽음 등 이승의 무질서를 바로잡으며 공동체 사회를 이끌어온 것이다.
더불어 제주도 무속신화인 본풀이 속에는 제주사람들의 상상력과 문화, 제주사회가 품고 있는
규율과 법칙, 가치체계가 담겨 있을 뿐만 아니라, 신화를 향유하는 신앙민 집단의 미의식이
고스란히 자리하고 있다.
개벽신화
제주섬의 본풀이, 곧 신들의 이야기 속에는 ‘개벽신화’가 있다.
우리나라에서 개벽신화가 있는 곳은 제주도뿐이다. 세계적으로도 ‘개벽신화’는 드물다.
제주섬의 개벽신화는 큰 굿의 맨 처음 제 차례인 ‘초감제’ 때 불려진다.
초감제에서 모든 신들을 일제히 청해 들여야 하는데, 그러려면 언제, 어디서, 무엇 때문에 굿을
해 청한다는 연유를 신에게 고해야 한다.
그 ‘언제, 어디서’를 설명하기 위해, 이야기는 천지개벽에서부터 시작해 굿을 하는 장소와 시간까지 차차 좁혀 내려오는 것이다.
이 개벽에 대한 신화 가운데 특히 천지왕이 총맹부인과 배필을 맺는 이후의 이야기를
‘천지왕 본풀이’라고 한다.
개벽신화의 앞부분만 간추려 소개하면 다음과 같다.
태초는 혼돈이었다. 하늘과 땅이 한 덩어리로 서로 맞붙은 암흑천지였다.
갑자년 갑자월 갑자일 갑자시에 개벽의 기운이 돌기 시작했다.
하늘과 땅의 머리가 저마다 열리면서 금이 생겨났다.
그 금이 점점 벌어지더니 땅덩어리에서 산이 솟아올랐다.
하늘에서는 푸른 이슬이 내리고 땅에서는 검은 이슬이 솟아나 서로 합쳐지더니 만물이 생겨나기 시작했다. 먼저 별이 생겨났다.
동쪽 하늘엔 견우성, 서쪽에는 직녀성, 남쪽에는 노인성, 북쪽에는 부두칠성이
그리고 하늘 한가운데 삼태성이 뜨더니, 이어서 많은 별들이 자리를 잡았다.
그 다음 구름이 생겨났다.
동쪽에서는 푸른 구름이, 서쪽에서는 흰 구름이, 남쪽에서는 붉은 구름이,
북쪽에서는 검은 구름이 그리고 하늘 한가운데는 누런 구름이 떠 오락가락 했다.
그러나 세상은 여전히 어두웠다.
천황닭이 목을 들고, 지황닭이 날개를 치고, 인황닭이 꼬리를 쳐 크게 울자 먼동이 트기 시작했다.
이때 하늘의 옥황상제 천지왕이 해 둘과 달 둘을 내보냈다. 드디어 천지가 활짝 개벽되었다.
개국신화
탐라국 개국신화요, 고·양·부 삼성의 시조신화인 삼성신화는 원래 무가(巫歌)였다고도 한다.
마을 형성기의 한라산 산신계 ‘당본풀이’가 부족국가를 형성할 때 세력을 장악한
고·양·부 삼성 씨족에 의해 ‘건국시조신화’로 개변·첨삭된 것이다.
이 개국신화를 간추리면 다음과 같다.
사람이 살지 않던 아득한 옛날, 한라산 북녘 기슭 땅에서 세 명의 신인(神人)이 솟아났다. 차례로 솟아난 고을나(高乙那), 양을나(良乙那), 부을나(夫乙那) 삼형제는 용모가 의젓하고 기품이 있을 뿐만 아니라 도량이 넉넉하고 활발했다. 그들은 거친 산야를 뛰어 다니며 사냥을 해 가죽옷을 입고 고기를 먹으며 살았다.
그러던 어느 날, 한라산에 올라 동쪽바다를 내려다보던 삼형제는 자줏빛 흙으로 봉해진 나무상자가 떠 내려와 바닷가에 머무는 걸 발견했다.
“어? 저게 뭐지? 가보자.”
나무상자를 열어보니 붉은 띠를 두르고 자줏빛 옷을 입은 남자가 새알 모양의 옥함(玉函)을 지키고 있었다. 옥함을 여니 푸른 옷을 입은 십오륙 세의 아리따운 처녀 셋이 나왔다.
또한 망아지, 송아지와 오곡의 씨앗도 들어있었다.
남자는 삼형제에게 절을 두 번하더니 엎드려 말했다.
“나는 동해 벽랑국(碧浪國)의 사자(使者)입니다.
우리 임금님이 이 세 공주를 낳아 곱게 키웠습니다만,
혼기가 되어도 마땅한 배우자가 없어 탄식하던 차에, 서쪽바다의 상서로운 기운을 보시고,
산기슭에 신(神)의 아들 세 사람이 장차 나라를 열고자 하나 배필이 없다 하시며
세 공주를 데려가라 하셨습니다. 부디 혼례를 올리시고 대업을 이루소서.”
말을 마친 사자는 구름을 타고 홀연히 날아가 버렸다.
삼형제는 몸과 마음을 깨끗이 하고 차례로 짝을 정해 혼례를 올렸다.
그리고 물 좋고 기름진 곳을 골라 역시 차례로 활을 쏘아 거처할 땅을 정했다.
고을나가 사는 곳을 제일도, 양을나가 사는 곳을 제이도, 부을나가 사는 곳을 제삼도라 했다.
이때부터 오곡의 씨앗을 뿌리고 말과 소를 기르게 되니 날로 백성이 많아지고 풍요로워져 마침내 인간세상인 ‘탐라국’을 이루게 되었다.
제주신화 속의 신들
제주신화 속의 여신들은 ‘맑고 맑은 조상’이며 ‘천하일색’이다.
남신은 ‘붕애눈을 부릅뜨고 삼각수를 거스르며 천근 활 천근 살 기치창검을 들고
천하를 호령하는 장군’으로 ‘밥도 장군, 술도 장군, 힘도 장군’이다.
제주사람들의 신화적 상상력을 엿볼 수 있는 제주신화 속의 몇몇 주인공들을 소개한다.
설문대할망
제주도에서는 여신을 ‘할망’이라고 한다.
신화에 의하면 설문대할망은 한라산을 인격화한 자연신이며, 천지창조의 여신이며,
오름을 만든 신이며, 바람의 신이다.
오백장군을 낳은 다산의 산육신이며, 팥죽을 끓여 오백장군들을 먹여 살리는 육아의 신이다.
설문대할망은 백성들에게 자신의 몸을 가려줄 속옷을 주문했다.
그것은 천지창조와 함께 수줍음과 부끄러움을 가리는 옷 입는 예절,
곧 문명의 시작을 설문대와 함께 했음을 암시한다.
명진국따님과 동해용궁따님
아이를 15세까지 보살피는 삼승할망 ‘명진국’과 아이를 저승으로 데려가는 구삼승할망
‘동해용궁’은 미모에 있어서는 우열을 가릴 수 없다.
두 여신의 차이는 하늘 옥황 명진국과 동해 용궁이라는 출생의 차이,
은실 같은 손으로 산모의 배를 쓸어 아기를 낳게 하는 법을 아느냐 모르느냐 하는 차이,
그리고 한 손에 번성꽃·생명꽃·환생꽃을 들고 아기를 건강하게 자라게 하느냐,
수레멜망악심꽃을 들고 아기를 저승으로 데려가느냐 하는 차이다.
결국 두 여신의 아름다움은 삶과 죽음, 선과 악의 차이다.
가믄장아기
가문장아기는 부모에게 ‘내 배꼽 밑에 선 금 덕분에 산다’고 주장하다 쫓겨난 여신이다.
맹목적인 효 관념보다 삶의 현실성을 중시하는 일하는 여신이다.
가문장아기는 사랑하고 부부인연을 맺어 재화를 벌어들여 복을 누리는 것이
‘여인’으로 타고났기 때문이라고 했다.
어디에 던져놓아도 자신의 복으로 산다는 가믄장아기는 어떤 상황에서도 살아갈 수 있는 일하는
여인의 아름다움을 상징한다.
자청비
부모가 정성으로 ‘스스로 청하여 낳은 자식’이라 이름 지었다는 ‘자청비’는 미모 뿐 아니라
지혜도 뛰어난 여신이다.
빼어난 문장과 비단 짜는 솜씨, 수수께끼를 푸는 지혜, 위기를 넘기는 기지,
하늘과 땅을 떠돌아다니는 방랑벽, 남장을 해 여인을 울리는 양성적 성격,
야수처럼 할딱이는 목축신 테우리 정수남이를 어르고 달래는 낭만과 열정,
서천꽃밭 황새곤간의 딸을 위해 사랑하는 문도령을 보내는 관용이 있는 자청비는 하늘나라의
난리를 평정하는 무용을 발휘하고, 그 공으로 오곡의 씨를 얻어 지상에 내려와 ‘농경신’이 되었다.
영감도깨비
영감, 참봉, 야차 등의 별명을 가진 신이다.
신으로 잘 모시면 부자가 되게 하고, 잘 모시지 않으면 패가망신하게 한다.
미색과 육식을 좋아하는 호색신이며 술의 신, 불의 신, 무구제작신, 예술의 신이다.
조왕할망
문전본풀이에 여산부인의 이야기가 나온다.
여산부인은 ‘육지에 장사 나갔다가 노일저대구일의 딸의 꾐에 빠져 밑천을 다 빼앗겨 백일 만에
영양실조로 장님이 된 남편’을 구하러 갔다가 서천강 연화못에 빠져죽은 착한 여인이다.
똑똑한 막내아들 녹디생이가 서천꽃밭 환생꽃을 꺾어다가 어머니를 살려낸다.
녹디생이는 어머니를 조왕할망으로 모시게 되었다.
조왕할망은 집안의 가계를 계획하는 여신이다.
마음씨와 몸가짐이 깨끗한 여신이며 가정주부의 신이다.
노일저대구일의 딸
문전본풀이에서 남선비의 첩으로 등장하는 ‘노일저대구일의 딸’은 악신 중의 하나다.
문전신 남선비의 본처인 여산부인을 물에 빠져 죽게 하고 남선비의 일곱 형제까지 죽이려다
막내 녹디생이의 지혜로 오히려 죽임을 당하게 된다.
이 여인은 죽어서 통시(변소)의 신인 ‘칙도부인’이 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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