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나라에는 창귀라는 귀신이 있는데
크게 두종류로 나뉜다.
1. 하나는 호랑이에게 물려 죽은 사람이 된 창귀
2. 고양이에 의해 생겨난 창귀로 볼수 있다.
(옛날에는 고양이가 죽은 사람의 시신 곁에 있으면 사람의 혼이
고양이에게 물들어 악령이 된다고 믿었는데 이런 귀신을 창귀라 불렀다.)
또 하나의 설은
1. 말그대로 피를 빨아먹는 요괴의 전형적인 모습과,
2. 호랑이에게 물려 죽은 어린아이(이것을 '호환' 이라고 부른다.)들의
시체를 쌓아놓은 데를 고양이가 뛰어 넘으면 창귀가 되는 경우가 있다.
조선 전기의 학자인 성현의 수필집인 <용재총화>나 고려시대의 <속요담>이라는 괴담집을 보면
창귀는 상당히 악질적인 취급을 받는 악령으로 묘사된다.
창귀는 보통 아이가 된다고 하는데 그 중 부모보다 먼저 죽는 불효를 저지른 아이가 된다고 한다.
우리나라에서는 어린 나이에 병으로 죽은 아이들의 시신을 제대로 장례식을 하지않고,
한곳에 모아서 돌로 무덤을 만들어 주는 풍습이 있었는데,
이 무덤을 애기살이 혹은 아장살이라고 한다.
참고로 호랑이에게 물려 죽은 사람들 역시 '호식총'이라는 돌로 만든 무덤을 만들어 주었기 때문에
두 귀신이 같은 이름을 가진걸로 생각된다.
애기살이에 묻어진 아이들의 원령은
너무 어린 나이라 저승에도 못가고 있는데,
이 무덤을 고양이가 뛰어 넘으면 그 아이의 영은 창귀가 되었다고 한다.
창귀는 얼굴이 창백하며, 고양이처럼 세로로 찢어진 눈을 하고 있는 아이의 형상을 가지고 있고
배고픔과 갈증 때문에 민가로 들어와 짐승들의 피를 빠는데
점점 맛이들려 산사람을 헤친다고 한다.
특히 창귀는 자신을 버린 부모와 어른들에 대한 원한이 매우크며,
생전 자신의 집으로 들어가 재앙을 주거나, 그 집 아이의 피를 빨아먹기도 해서
상당히 악질적인 귀신으로 여겨졌다.
창귀는 아이 특유의 순수하지만 악한 면을 가지며 상당히 물리치기 힘들다고 한다.
어른이 된 귀신같은 경우 생전의 한이나 원하는것을 들어주면 되지만,
아이에게 모든것인, 즉 부모에게 버림받은 창귀는 달랠 만한 점이 없기 때문이다.
창귀의 가장 큰 문제는
'초대받지 않아도 출입 할 수 있다' 는 것 이다.
일단 어린아이의 모습을 하고 있으니 사람들이 쉽게 경계심을 풀고 그들의 출입을 허가하는 경우와,
보통 집은 그들 집의 '가택신'인 성주신이나 토지신의 보호를 받아 잡귀의 출입하는 것을 막을 수있는데
유독 창귀만은 막아줄수 없기 때문이다.
('가택'이라는 개념을 쉬이 넘어 갈수 있는 요괴(신과 성수를 모두포함한)는 저승사자나 마마 정도 밖에 없다.)
호랑이에게 물려죽은 창귀 퇴치법으로는 창귀가 신것을 무척좋아하기 때문에(피도 좋아하지만),
길가에 매실을 잔뜩 뿌려서 신것을 좋아하는 창귀가 주워먹고 취하면 그때 손쉽게 잡는다고 한다.
어린아이 형상의 창귀 퇴치법으로는 매우 특이한데,
창귀의 앞에 한줌의 쌀이 떨어져 있을 경우, 창귀는 그 쌀을 세느라 시간을 보내게 되며
이 때 무당이 창귀의 주위로 진을 치거나 동자신을 보내 제압할수 있었다고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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실제로 <조선왕조실록>에 창귀의 일화들이 실려있는데,
<가찰비록> 에서는 창귀가 사람의 피를 마시는 부류로 등장했지만, 본래는 호랑이 에게 잡혀먹힌 사람의 영혼을 말하는 것이라고 한다.
<청우기담> 이라는 책에는
"창귀는 호식(호랑이에게 먹힌)당한 사람의 영혼으로, 감히 다른곳으로 가지 못하고 오로지 호랑이의 노예가 된다" 고 나와있다.
창귀는 지옥같은 호랑이의 위세권에서 탈출하려고 '사다리' 혹은 '다리'라고 불리는 행위를 하는데,
이는 다른 사람을 호랑이에게 잡혀 먹히게 하는 것으로 물귀신과 흡사한 행위라고 전해진다.
즉, 다른 사람을 창귀로 만들고 자신은 저승으로 가려는 것이라고 볼수 있는데.
한사람이 잡아먹힐 때마다 창귀는 호랑이에게서 조금씩 벗어나게 되며, 열명의 사람을 잡아먹히게 하면
창귀 자신은 호랑이에게서 벗어날수있고 대신 잡혀먹은 열명의 사람들은 더욱 무서운 창귀로 변하게 된다고 한다.
박지원의 <호질>에서 창귀를 세 가지종류로 이름을 붙여 놓았다고 한다.
한 사람을 잡아 먹은 호랑이 창귀는 '굴각' 이라 하고,
두사람을 잡아 먹으면 '이올'
세 사람을 해친 창귀는 '죽혼' 이라고 한다.
'굴각창귀'는 호랑이의 겨드랑이에 달라 붙어서 부엌으로 들어가 솥을 핥으면 주인이 한밤중이라도 솥이있는 부엌으로 나오지 않고는 못견디게 만들만큼 배고프게 만드는 능력이 있고.
'이올창귀'는 호랑이의 광대뼈에 붙어서 높은 곳에 올라 사냥꾼이 설치한 사냥틀이나
강노(强弩:굳셀 강, 쇠뇌 노:여러개의 화살이나 돌을 잇따라 쏘는 큰 활)를 벗겨놓는 능력을 지녔다.
'죽(육)흔창귀(팥 육, 혹은 죽 죽이라는 한자를 쓴다)'는 호랑이의 턱에살며,
사람의 목소리로 사람을 불러대는 능력이 있다.
창귀는 사돈네 팔촌까지 아는 사람들을 찾아다니며 새 창귀감을 구하는데,
반드시 사람을 불러내거나 유인하여 범에게 데려간다.
그래서 호식되어갈 사람은 다른 사람들이 아무리 막아도 창귀에 씌여 자꾸 나가려 하는 등 이상행동을 보인다.
사돈에 팔촌까지 손을 뻗어 희생자를 찾기때문에 옛날에는 호환을 당한 집안과는 혼사를 치르지 않으려고 했다고 한다.
또한 창귀들은 슬프게 노래를 하는데, 살아있는 사람이 자꾸 슬픈노래를 부르면 창귀에 홀린 것으로 보기도 했다.
그래서 구슬프고 청승스럽게 노래를 부르는 사람에게 "창귀들렸나, 청승스럽게.."라고 하기도 하였다.
지금도 태백산 부근의 마을에서는 밤에 누가 밖에서 부르면 적어도 세 번이상 불러야 대답한다고 한다.
창귀는 세번이상 사람을 부르지 않기 때문에 세번이상 부르면 안심하고 나가도 된다.
지역에 따라 창귀의 이름은 여러가지로 '산횡사귀신'. '홍살이 귀신', '뫼 홍살귀','가물글기' 등이 창귀의 다름이름이다.
악독한 전염병(콜레라)를 '호열자'로 부를만큼 우리나라는 산세가 많아서 호랑이에게 잡혀먹힌 사례가 무수히 많았다고 하는데, 중국 대문호인 노신이 조선사람을 만나면 제일먼져 호환당한 이야기 부터 시작한다고 말할 만큼 호랑이에게 호식당한 경우가 많아
'조선왕조실록'을 보면 태종 2년에 경상도에서 호랑이에게 물려가 죽은 사람이 수백명이라는 기록이 있고,
중종 19년에는 황해도에서 호랑이에게 상한 사람이 40여명 되었다고 하며,
영조 19년에는 평안도 강계에서 20여명이 호랑이에게 물려 죽었고,
영조 28년에는 호랑이가 경복궁 후원에 들어왔다 한다.
영조 30년에는 경기도에서 한달 동안 물러죽은 사람이 120여명이나 되었다는 기록이 있다.
호랑이에게 물려죽은 사람을 '호식장'이라는 독특한 장례를 치워줘야 뒤탈을 예방할 수 있는 것으로 전해져왔는데,
유해가 놓인 자리(호식터)에 화장을 하고 그 위에 돌무덤을 쌓고 또 그위에 시루를 엎고(시루에는 총 9개의 구멍이 있는데 아홉게 모두 물레용 쇠가락 을 꽂기도한다. 하늘의 징벌인 '벼락' 즉, 쇠가락으로 창귀를 제압한다는 상징성과 물레용 쇠가락처럼 제자리에서 맴돌기만 하고 빠져나오지 못하겠다는 뜻이 담겨있다.)
시루 한가운데 구멍에 물레의 쇠가락을 꽂아 넣어 '호식총'이라는 무덤을 만들었다.
즉, 창귀를 완전히 없앤다는 뜻이라고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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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괴담 1>
용재총화에 나오는 이야기로
전라북도 완주에 애기살이 터가 있었는데 어느날 만취한 채 산으로 들어간 청년 둘이 날이 밝아도 돌아오지 않았다.
결국 사람들이 찾으러 갔는데 아장살이 근처에 청년들 시신이 발견되었다.
청년들의 시신은 몸이 군데군데 할퀴어 진듯한 상처가 나있고 몸에 피가 남아있지 않았다고 한다.
사람들은 의논끝에 아장살이를 불태웠는데, 불에 탈때 아이와 고양이들의 우는 소리가 들려왔고
마을사람들은 공포에 떨며 마을을 버리고 떠났다고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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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괴담 2>
한 중년의 여성이 백정에게 방금 잡은 소의 고기를 집으로 가지고 가고 있는데
누군가가 자신을 따라오는 느낌이 들었다고 한다.
아낙은 처음은 그러려니 하고 다시 길을 가는데
갑자기 허리춤에서 묵직한 느낌이 느껴졌고
어디에선가 무언가를 핥는 듯한 소리가 들려 왔다.
이상한 생각에 아낙이 고개를 내리자,
그녀의 허리에 한 봉두난발의 아이가 아낙의 허리에 매달려
고기에서 나오는 피를 핥고 있었고, 아낙은 그대로 그자리에 기절을 한뒤, 며칠만에 병으로 죽었다고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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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실화 1>
태백시 창죽 조대장터 어귀에 힘이 장사인 김씨가 살았는데,
사람들은 그를 '김 장군'이라고 불렀다.
그는 눈썹이 유난히 길어서 옛말에 눈섭이 길면 호식당한 상이라했다고 사람들이 말하니,
그는 크게 웃으며 그런소리 말라 하였다.
까마귀가 몹시 울던 어느 날,
김씨는 집 앞 개울가에서 나무를 하다가 늘어지게 낮잠을 자고있었다.
갑자기 호랑이가 나타나 앞발로 김씨의 배를 찍어 당겼다.
놀라 일어난 김씨는 호랑이와 마주 엉겨붙어 뒹굴었다.
근처에 있던 아내가 달려왔으나 겁에 질려 부들부들 떨기만 하다가 웃마을로 사람들을 부르러 가는 것이었다.
김씨는 아내에게
"사람 데리러 갈 것 없이 낫이나 도끼, 아무것이나 나에게 던져만 주면 된다!"고 악을 썻다.
마을 사람들이 달려 왔을 때는 김씨는 간데 없고 뼈만 남아있었다.
그곳에서 화장을 한 뒤 돌담을 치고 시루를 엎으니 사람들은 그 자리를 '장군 화장터'라고 부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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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실화 2>
태백시 문곡동 편뜰에 살던 대씨의 집안 여자아이가 며칠전부터 장세마을 산등을 쳐다보며 자꾸 슬피 울더란다.
집에서는 아이가 어디 아픈가 하면서도 별일은 없겠지 하며 별 신경을 쓰지 않았다.
그날 아버지는 춘양장에 다녀와서 잠시 누어있었고 어머니는 방앗간에서 보리를 찧고 있었다.
그때 갑자기 방문이 버석 부서지는 소리와 함께 범이 나타나 아이를 눈 깜짝할 사이에 물고 갔다.
장세마을 산등바위 위에 아이의 머리만 남겼는데,
혀로 머리를 싹싹 빗어 왼 가르마를 지어놓았단다.
그 자리에서 화장을 하고 시루를 엎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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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나라의 흡혈귀에는 창귀 외에 두억시니가 있는데,
두억시니는 부정되고 악하된 악령들의 피를 정화하는 신적인 면이 크지만,
창귀의 경우는 사악한 전형적인 흡혈귀의 모습을 하고있다고 볼수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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